異敎正典

이교도적 부정신학


I

번역에 대하여


II

닉 랜드

소멸 갈증


참조 부호


서문


1


3


4


5


6


7


8


9


10


11


참고문헌


조르주 바타유

제쥐브


2


3

희생


4

《도퀴망Documents

꽃말


5


9

《비평 사전》

건축


10

유물론


11


12

먼지


13

도살장


14

비정형


15


17


18

《철학 연구》

미궁


19

《사회학 학회》


20


22

《아세팔Acéphale

신성 모의


23


24


25

《므쥐르Mesures

《예술 연구》


29

앙토냉 아르토

Glenn Gould

부록


ASSIMILARE

오벨리스크

조르주 바타유

신의 죽음이라는 불가사의

‘불가사의’는 정신이라는 텅 빈 자리에서 생겨날 수 없다. 그 텅 빈 자리에는 삶과는 무관한 말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추상에 불과한 공허와 어둠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으로부터 불가사의가 생겨날 수도 없는 일이다. ‘불가사의’가 묘한 것은 곧 민중의 둥지로부터 자각몽으로 빌려온 형상 또한 묘한 것과 같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늘에 감춰두었던 것을 꿈에 나온 형상이 간혹 볕 아래로 끌고 오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꿈에 나온 형상이 나날이 무관심에 가려져 있던 표상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있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교수대부터 오벨리스크까지, 광장에서는 모종의 구성체가 생겨나고 있다. 즉 역사의 마력과 기념비의 광경이 ‘문명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광장 위에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무언가에 맘을 홀려 광란에 푹 빠진 사람 하나가 공공연히 ‘니체의 광인’을 자처하며 꿈의 등불을 손에 들고서 신의 죽음이라는 불가사의를 설하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니며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

니체의 예언

니체는 이렇게 외쳤다.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 — 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무한한 허무를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 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1

불가사의와 광장

사람이람 본연의 존재이자 한 사람의 운명으로서, 이 운명의 한계 안에서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운명의 한계 바깥에서는 — 인간의 의미작용이 시작되며 —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가 매력에 따라 좌우되며, 매력을 빼놓고서는 그림자보다도 먼지 티끌보다도 못한 존재다. 외로운 인간 존재의 매력이란 그 자체로 그림자에 불과하고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며 도리어 동정받아 마땅한 것이다. 사람이란 그저 인간의 생명에 불과한 것이 잠시 피와 살을 입은 것이다. 군중은 이름조차도 없이 무수히 모여들어 소란을 일으키며, 사람이라면 그저 상반되는 겉모습에 자족하라고 넌지시 요구하고 그 겉모습에 사람을 가둔다. 그 어떤 쓰라리고 성스러운 것이 있어서 이러한 소란을 발산하는가 — 인간의 공포 폭력 분노 비통 죄 권태 웃음 사랑이 다 합쳐져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알 수 없다. 개개인은 이 쓰라린 존재 주변을 공전하는 먼지 티끌에 불과하다. 먼지는 응축이 뭉치는 주변을 공전하며 가운데 엉기는 것이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렇게 (숨을 곳 하나 없는 사람이 느끼는 고독 속에서 발산하는 격렬한 빛이 아니라) 갖가지 활동이 뭉치는 곳에서 형성된 명철한 정신이란 일종의 잔여물일 뿐이다. 중심을 이루는 기념비와 기념 광장이 아니라 변두리의 모습을 보고서 중심의 현실을 판단하려는 자, 공허하며 변두리의 향취를 풍기는 형체를 보고 삶이란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려는 자만큼이나 정신은 인간의 실존을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오벨리스크

클라우스비츠는 저서 《전쟁론》에 이렇게 썼다. ‘마치 고장을 지나는 큰길의 기점에 놓인 교차점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처럼 지도자의 능동적인 의지는 무예가 만물에 넘쳐흐르는 중심을 이룬다.’ 콩코르드 광장은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목청 높여 외쳐야 할 장소다. 콩코르드 광장에 떡하니 놓인 오벨리스크는 곧 한없이 고요한 부정과 같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하고 공허한 인간 먼지가 한없이 오벨리스크 주위를 공전한다. 그러나 기하학적 단순성을 불러일으키는 규칙적이고 고요한 공간보다 이 군중이 느끼는 난잡스러운 갈증을 잘 채워주는 것은 없다.

오벨리스크는 지도자와 하늘을 가리키는 한없이 순수한 형상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오벨리스크가 군사력과 영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피라미드 무덤을 향하여 지는 태양빛을 바라보던 정서로 저들이 세운 훌륭한 거석의 꼭대기에 비치는 아침해의 광채를 보았던 것이다. 파라오의 군사 주권에 있어서 오벨리스크가 지니는 의미란 곧 말라버린 파라오의 주검에 있어서 피라미드가 지니는 의미와 같았다. 삼라만상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막기 위하여 세운 벽이었으며 단단할 수 있는 만큼 단단하고 견고할 수 있는 만큼 견고했던 것이다. 숱한 민족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도 오늘날까지 이어 하늘 한가운데 그 꿋꿋한 형상을 우뚝 세운 것이 뚜렷이 보이는 곳곳에서 지배력을 잃지 않은 것 같구나.

따라서 수많은 길이 사방으로 발산하는 중심에 우뚝 선 람세스 2세의 고(古)오벨리스크는 그 어떤 것보다 단순하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한 이 오벨리스크, 이 이집트의 불멸의 상, 이 석화된 햇빛은 머나먼 옛날로부터, 머나먼 변두리로부터 도시 한가운데로 흘러와 다시금 숨쉬는 경탄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오벨리스크는 피라미드에 대응한다

그 많은 피라미드가 차지하는 중량과 당대 건축가들이 사용한 기초적인 도구를 생각해 보면,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일보다 큰 노동력이 들어간 계획은 확실히 없다.

단언컨대 사람에게 끝을 모르는 존재 의지와 구조를 처음 쥐여 준 것은 이집트 파라오였다. 이 끝을 모르는 존재 의지에는 땅 위에 꿋꿋이 구조를 세워 마치 빛나서 살아 숨 쉬는 건축물처럼 일어서는 경향이 있다. 대(大)피라미드 시대가 저편으로 저문 지도 한참이 지난 뒤, 개인은 서로 모여 스스로 불멸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래서 당대까지만 해도 주권자의 특권이었던 오시리스 신화와 장례 의식을 탈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군중이 막대한 힘을 쟁취하여 유일무이한 머리 안에 뭉친 후에 그제야 인간의 존재가 영원한 권세를 탐하는 야욕을 하늘 높이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머리가 프셴트pschent, 이중관를 통하여 비로소 군중 앞에서 신성한 공포를 일으키는 사물로 변하기 이전까지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이래로 힘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주를 죽음이 무너뜨릴 때마다 세계 자체가 흔들렸고 또 회의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사물의 질서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선 피라미드라는 대건축물만 세우면 되는 일이었다. 피라미드는 신왕(神王)을 하늘로 올려 태양이신 라Ra의 곁에 있게 하였으며, 존재는 피라미드에 기린 사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충만을 되찾았다. 오늘날까지 피라미드는 환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인간의} 결의가 고요히 승리를 이루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여태껏 인간이 세운 것 중에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장대한 크기에 대적할 건축이 또 없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그저 케케묵고 큼지막한 건축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피라미드는 가장 견고한 건축물이다. ‘뇌우에 가린 원반이 구름을 꿰뚫고 볕으로 된 사다리를 땅 위에 떨어뜨릴 때’, 피라미드 측면을 이루고 있는 대삼각형은 ‘마치 태양의 화살처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듯하다.’ 피라미드는 이처럼 대지 위에 하늘이 무한히 펼쳐지도록 하노라. 불변하는 프리즘prisme이 주변에 놓인 것을 반사하듯 하늘은 인간이 일으키는 소란을 끊임없이 저 멀리서 관찰하고 지배하노라. 피라미드는 숱한 시대가 잇대어 흐르는 모습을 불멸의 통일성에 — 끊임없이 — 결정(結晶)시키노라. 변치 않는 암석이 되어 일어나듯 온 세월이 나일강 연안에서 똑같이 일어나서 인간이 서로 하나둘 죽여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피라미드는 시간이 발밑에 뚫은 괴로운 공허를 초월한다. 피라미드의 기하학적인 표면에 모든 운동이 다 멈춰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이에게는 없는 것이 피라미드에는 계속하여 있는 듯하다.

영광은 ‘시간의 감각’을 구한다

피라미드의 능선부터 가브리엘의 궁전 앞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의 능선까지 나일강 연안부터 센강 연안까지 무수히 늘어진 시체의 그림자와 자취가 쭉 펼쳐져 감격스러운 정경을 형상하고 있다. 그 불변함이 그지없어 삼라만상을 허무는 시간의 운동을 막을 경계를 설치하는 데는 고대 이집트 왕국부터 — ‘대민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콩코르드 광장 위에 오벨리스크를 세운 — 오를레앙의 부르주아 군주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주는 근원의 불변을 보장하는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단출한 영원성 속으로 조소를 머금고 어슬어슬 끌려 들어갔다. 느릿느릿 흐리터분 흐르는 역사의 운동은 바로 이곳, 존재의 심장에서 일어난 것이지 변두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신의 기나긴 싸움이고 멈추지 아니하는 싸움이며, ‘정주하는 주권’ 대 만물을 부수고 창조하는 비이성folie, 광증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역사란 강과 불로 이루어진 헤라클레이토스의 세상에 대고 변치 않는 암석으로 되풀어 답하기를 끊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숱한 세기를 거치며 발전한 이 변화무쌍한 시각의 끝에는 어떠한 결과가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면서 분명하게 보이는 듯하고, 형상이 기이하다시피 산더미로 쌓인 모습도 굽어본다. 무릇 노동이 ‘필요’의 감각과 매어져 있듯이 극악무도한 ‘시간의 감각’을 막기 위해 사방에 세운 경계석도 도리어 ‘시간의 감각’과 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필요’, 즉 곤궁은 쉬지도 않고 유용한 노동의 결과물을 바닥까지 소진하며, 인간의 기승에는 끝이 없어 공통의 존재로부터 ‘시간의 감각’도, ‘시간이 감각’이 자아내는 치욕스러운 불안마저도 유리하기에 이르렀다. 계량과 진부가 어슬어슬 세상을 장악했고, 시계는 점점 더 정확해져 모래시계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모래시계는 죽음의 향취를 풍기고 있다. 한때 사신의 낫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그마저도 다른 유령의 명을 따라 뒤안길로 사라졌다. 밤이 무서운 원인이 대지에서 아예 사라져 버린 나머지 끔찍한 불행과 전쟁마저도 그저 쾌적하기만 한 겉모습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야욕은 이제 옛날처럼 강대하고 장중한 경계석을 바라지 아니하고 도리어 변함없는 고요를 떨쳐버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운동의 세상을 열어준 ‘시간의 감각’ 없이 인간은 삶을 이어갈 수 없다고 만물은 말하는 듯하다. 하나 인간이 과거에 공포로 느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자부심으로도 영광으로도 느낄 수 없노라.

이 말의 중요성을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태껏 소란과 불안을 간직해온 경계석 주변으로 삶이 온통 모이어 돌던 것을 돌연 멈춘다는 뜻은 아니다. 겉만 보면 주권자를 보호하는 경계석은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며, 폭력 앞에 쓰러질 수도 있었을 것이며, 하다못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돌무더기로 변질되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계석의 장엄한 형상으로 나누어진 지평선의 끝은 끄덕이 없었다. 누군가 영광에 경도되어 시간을 목도하고 시간의 매서운 폭발을 다시금 목도하게 될 때 그때 그자는 경계석을 다시금 보게 되리며, 바로 그 순간 죽음이 계시되리라. 한껏 가라앉은 존재 집합에 경계석이란 그저 점점 쓸모없어져 가는 공허하고 연약한 그림자 따위에 불과하므로, 경계석이란 항상 쓰러질 위험을 안고서 서 있을 뿐이며, 그러므로 삶의 처절한 추락을, 두려움에 떨며 과거에 집착하는 행위보다도 더 무참하게, 깡그리 드러내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경계석이란 사라져 뇌리를 떠나지 않는 ‘시간의 감각’을 막는 벽이 아니다. 경계석이란 성소이며 어마어마한 추락의 속도에 열려있다. 그리고 계시가 완전하기 위해서는 성소마저도 허물어지노라. 태양으로부터 대지가 뜯겨 나가고 수평선이 소멸한다. 그리고 오늘 내면에 ‘신 죽음’의 정복과 함께 울리는 순진무구한 굉음을 지닌 자 앞에서 옛날에는 폭풍우를 막고 있던 바위가 그 무엇도 가둘 수 없는 파멸의 장대한 크기를 표시하는 표지가 되었도다. 폭발의 감상(感想), 어지러운 경쾌함이 지엄하고 둔중한 오벨리스크 앞에서 커져가노라.

‘그리스인의 비극적 시간’

상징의 전복은 피라미드 건축이라는 대규모 석공 작업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물이 단조롭고 일정하게 운행함으로써 상징이 전복되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공포라는 단순한 감정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수많은 왕이 행사하던 마력은 시간에 한계를 지었고, 그렇게 시간은 단단하게 굳어서, 강철 포탄 속에 압축된 폭발보다도 더 매혹적이었다. 무릇 행복과 폭발은 서로 퍽 밀접하기 때문에 복된 힘이 폭연déflagration, 폭발도 좌우하였다. 옛날에 사람에게는 적막보다는 투쟁을, 안정보다는 추락하는 파멸을 더 사랑할 자유가 있었다. 상고시대 그리스인들이 바로 이렇게 인간과 폭력이 하나 될 수 있다는 바를 미리 보여주었노라.

크로노스의 힘이란 아버지 우라노스 즉 하늘에 계신 주권자의 양물을 베어서 쟁취한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인조차도 상흔과 죄의 아들이었다. 황금시대의 신 크로노스는 ‘인간적’이기 그지없었으며 사투르누스제(祭) 때 숭배를 받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기에 — 범죄자 제우스가 일격의 번개로 세멜레를 죽였기에 — 이 땅에 탄생하시어 환희로 바스러진 비극의 디오뉫소스는 바쿠스제(祭)로 수많은 신도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비극이란 수많은 ‘불가사의’ 중에서도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공포를 일으키는 시간에 바치는 축제와도 같다. 비극이 사람들 위에 광증과 죽음의 상징을 꿰맞추어 놓았으며, 그 모습에서 인간은 저들의 참된 본질을 깨달을 수 있으라.

삶이란 복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보았던 요란한 계시가 이에 답했다.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계시가 곧 온 땅이 무르도록 요동치는 대지와도 같다고 답했다.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계시를 서술하기 위해서 후일 10년 뒤에 ‘신 죽음’을 천명할 때 한 말을 똑같이 써먹었다. 영광으로 번쩍이는, 더할 나위 없는 추락의 광경이었다. 신 죽음의 소용돌이는 만물을 과거로부터 뿌리째 뽑으며, 그 속에서 니체가 비극 시대의 그리스인에게 느꼈던 고통스러운 애착의 원인, ‘사라진 세상에 대한 향수’가 이렇게 다시금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 소용돌이에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보고 분노한 이유가 있다. 요동치는 인류에게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가르친 것은 사실 법칙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은 빈약한 법칙이었으나 불변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나름의 필연에 따라 투쟁의 경쾌함을 끝장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것은 이었다. 이란 곧 이었고 또 기독교의 무게였으며, 창공의 고도에 이른 정열을 지닌 비극을 억눌렀고, ‘신 죽음’을 인간의 겸양, 죄 따위로 끌어내렸으며, 시간 따위로 끌어내렸다.

오벨리스크와 십자가

로마의 오벨리스크 위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어 피라미드를 닮은 끝에 허술한 금속을 덧댄 꼴이다.

‘신 죽음’이라는 아리송한 광경이 불변하는 주권의 경계를 고정하고 있던 왕령을 쳐무너뜨린다. 조급한 여흥이 이 어설픈 결합을 벗어나 불행의 참모습을 꿰뚫어 본다. 형상이 형상으로 이어지고 쌓이는 데서 불행이 기인하며, 군중이 목숨을 이어가는데 불행이 없을 수 없다. 로마 기독교의 복된 소탈은 이렇게 세상에 생겨난 것이다. 그 속에서 삶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양립할 수 없는 기질이 서로 양립할 것을 구하였노라. 그러나 괴상하며 교묘한 대건축물이 일어서는 것은 그저 무너지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와 동시에 자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성자 놈들이 소름 끼치게시리 속죄할 때 열기란 열기는 다 막아 써서 진즉에 씨를 다 말려버린 서방 세계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아들을 찢어 죽였던 것은, 언젠가 힘이 생겨나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를 끝장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고대에 삶은 발전하면서 점점 신의 그림자를 키워가며 비극적 시간을 배척하였으나, 존속에의 의지조차 참인 명제 속에 한시도 묶어놓을 수 없던 위험천만한 건축물을, 서방에서 삶의 운동이 하나둘 무너뜨리노라. 금세기는 금은보화가 늘어나고 그 속에 있는 것은 하나같이 썩어감에 따라 옛 시대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그리스의 원초적 순수라는 비극적 해방을 마음속 깊이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의 파괴 행위로 말미암아 사방이 깎이고 파여 텅 비어가는 영역이요, 세상 속에서는 실로 온갖 것이 다 일어난다. 그러나 인간의 장대한 운명이 시작되는 곳에서 삶과 죽음의 음악은 점점 박차를 가하며 저 아래 추락하는 듯 심히 어지러운 속도에 이르노라.

헤겔 대 불변의 헤겔

이런 운동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휴식의 감각이 증가하는 데 따라 운동은 도리어 더욱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오벨리스크 아래에 놓인 인생사의 굴곡을 보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이었으라. 특히 정신이 경쾌한 감각으로 시간을 마주할 수 있기 위해선 {오벨리스크의} 그늘이 주는 평안을 꼭 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방향은 처음부터 깔끔하거나 뚜렷했던 적이 없었다. 헤겔조차도 정신은 운동을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처럼 말하고서도 정신의 운동은 결국 자체로 {정신으로} 귀결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운동에는 어쩔 수 없이 꼭 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닌가. 이렇듯 헤겔은 시간의 운동에 구심적 구조를 부여하였다. 주권 존재 신이 지닌 성질이 곧 구심적 구조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중심을 무너뜨리며 원심력처럼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다. 중심이 있는 존재 속에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이렇듯 변증법적 개념이란 시간과 그 반(反)의 종합에 지나지 않으며, 신의 죽음과 불변하는 지위의 종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변증법적 개념은 죽기를 거부하는 사물을 파괴하려 열렬한 생각의 운동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구속 수단인 법을 부수리만치 시간을 제패하려 열렬한 생각의 운동을 가리키노라. 시간의 자유가 헤겔의 너저분한 과정을 관통한다는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가 인간을 위압하는 영원한 존재를 이 세상에 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명하게 드러난다.

수를레이의 피라미드

으레 사유의 모태라는 것이 그러하듯, 헤겔과 니체 사이는 그저 행복스럽게 안에 들어있는 것을 먹어 삼키는 새와 껍데기를 깨부수는 새의 사이와 같다. 껍데기가 깨지는 중대한 순간은 니체의 말을 통하여야 제대로 형용할 수 있노라.

‘감정이 너무 거세어 나는 벌벌 떨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세차게 울었다. […]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다. 환희의 눈물이었다. […] 그날 나는 숲들을 지나 실바플라나 호숫가를 걸었다. 수를레이 근처, 피라미드처럼 거대하게 솟은 바윗덩이 옆에서 멈추었다.’2

니체가 고뇌하며 느닷없이 황홀한 영원회귀를 계시받았을 때 느꼈던 것은 보통 사람들이 심오한 사상이라고 믿는 것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다. 계시에서는 파악의 대상이 표상 범주를 초과하여, 표상하는 즉시 황홀경의 대상 — 눈물의 대상, 웃음의 대상… — 으로 바뀔 정도니까. ‘회귀’의 매서운 성질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회귀가 동떨어진 순간에 불과하다면 형식적 사항마저도 공허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공포로부터 해방하며 찢어지는 깊은 균열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찢어지는 회귀의 현현, 헤라클레이토스가 본 폭발하는 영상을 상상했을 때 니체가 느꼈던 것, 나중에 ‘신 죽음’의 영상을 보고서 니체가 느꼈던 것을 한데 엮어야 한다. 끊임없이 삶을 부수며 강력한 섬광으로 삶을 비추는 한줄기 벼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일이다. 시간이란 헤라클레이토스가 본 영상의 대상이며, 자신의 영원성으로 존재에 변치 않는 토대를 선사한 자가 ‘죽어가는’ 속에서 사슬로부터 풀려나는 시간이라. 용맹스러운 행위가 ‘회귀’를 상징하며, 파열의 정점에서 죽은 신으로부터 능을 벗기어 시간이라는 만물을 허무는 비합리에 선사하노라.

이렇듯 ‘영광의 상태’란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과 능수능란하게 매어져 있다. 진즉에 추락의 감각은 사람이 느끼는 황홀경과 이어져 있었으며, 시간의 본질에 닿은 자의 도취를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만, 시간의 추락은 인간 본래의 추락이고, ‘회귀’의 추락은 궁극이다.

단두대

‘옛날에는 폭풍우를 막고 있던 바위가 그 무엇도 가둘 수 없는 파멸의 장대한 크기를 표시하는 표지가 되었도다…’ 수를레이 근처 피라미드 형상을 한 바위가 아직껏 ‘회귀’라는 추락을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존재가 강력한 부조리의 감정을 뿌리칠 수 있는 피난처는 — 벌벌 기는 것, 유용한 것이라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 길고 긴 하찮은 일뿐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는 죽어서 존재에 강력한 보호막을 씌우던 마법의 주문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그리고 극도의 운이 다시금 운명이 위치하는 중심을 이루고자 할 때는 나날이 무관심 속에서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로다.

룩소르 오벨리스크는 100년 전부터 계측을 사랑하는 나라 한가운데 자리한 배꼽과 같았다. 오늘날에 룩소르 오벨리스크의 정교한 각은 그 바닥면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주요한 형상을 이루는 부분과 같다. 그러나 룩소르 오벨리스의 영원성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가망이 보이는 긍정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발상하는 것이다. 즉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계속하여 견고한 이유는 비밀스러운 가치 덕분이다. 한때는 온 세상 보라는 듯 법칙을 긍정하던 숱한 기념비들도 다 쓰러져버린 콩코르드 광장에서,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상징하는 주권과 계율의 권위를 민중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왕정의 형상도 혁명의 형상도 아무런 힘 없다는 것이 확증된 콩코르드 광장에 어울리는 상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계속해서 비워두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키던 위풍당당한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으며, 이집트에서 가져온 기념비를 대신 세우자는데 만장일치가 일었다. 이보다 일이 잘 되기는 어렵다. 겉보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형상이 최악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광장에 그 고요한 위용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을 떨쳤다. 의식을 동요케 하고 짓누를 뻔했던 그림자는 해소되었고, 신도, 시간도 남지 않았다. 주권자와 그의 목을 자른 단두대 날은 민중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잃어버렸다.

끝없이 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삶의 무가치함에 관하여 성소는 이렇게 요사스럽고 막연하게 답하고 있다. 광인이 비이성의 등불로 바위를 비출 때 비로소 이 광경이 바뀌리라.

바로 그 순간 오벨리스크는 이 현세의 것이기를 멈추고, 공허하기도 정지하며, 역사가 도래하기 이전을 향해서 날아간다. 그곳에서 오벨리스크는 불변이 되며, 미친 듯이 도망가는 시간의 도주를 압도한다. 시간의 도망은 오벨리스크의 지배에 현혹되지만, 등불에 홀린 날벌레처럼 오벨리스크의 모서리를 공전하는 {민중의} 광기는 끊임없는 시간이 끊임없는 폭발음을 일으키며 도망가는 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이제 오벨리스크 앞에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중의} 광기는 이 끊임없는 폭발음을 듣게 된다. 지금 오벨리스크가 먼 과거의 숭고를 두른 채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면, 오벨리스크는 {민중의} 의식이 사물을 놓치고 활주케 하지 않으며, 도리어 온 민중의 이목을 단두대로 집중시키노라.

갑주를 두른 팔인(八人)의 무두인이 궁전 난간 높이에서 콩코르드 광장을 굽어보고 있으며, 팔인의 석모 밑은 사형집행인이 팔인의 석상 앞에서 왕을 참수한 그날만큼이나 공허하다. 마를리의 두 마리 말은 근처 숲에서 성소로 끌려와 그 앞에서 뒷발로 선 채 흥분을 그치지 못한다. 두 마리 석마와 오벨리스크가 이루고 있는 삼각형의 중심이 단두대가 있었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그곳은 텅 비었으며, 빠른 {회전} 원운동에 훤히 트인 공간이다.

테세우스 니체

순수한 하늘의 형상, 순수한 왕의 형상, 순수한 지도자, 순수한 우두머리의 형상과 그 견고함을 드러내는 형상, 빛줄기로 꿰뚫린 이 순수한 하늘의 형상은 그것을 바라보지 않으며 느끼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화합과 확약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현실을 가감 없이 비추기로 한 자에게는 정신의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순수한 우두머리가 천명한 계율은 반박할 수 없으며,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우두머리는 무심코 보던 자가 길을 잃고 가야 할 방향조차도 잃어버리는 미궁의 입구에 놓인 보잘것없고 이상야릇한 석상의 의미를 취한다. 미궁에는 고통과 영광이 차고 넘치며 한시도 조용한 법이 없다. 당장의 정치적 의미로 창작한 해석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곳에서 — 하나의 사건이 더욱더 커다란 사건의 징조에 지나지 않는 이곳에서 — 이곳에서 ‘텅 빈 곳의 숨’을 쉬게 되리라. 무릇 끝없는 공허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바로 사물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영웅과 괴물이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않는 기간durée을 대가로 누가 죽을지 결정하는 결투 앞이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정복 앞에 놓인 것은, 외로운 생물이 아니라 공허 그 자체이고, 어지러운 추락이며, 시간이다. 이제 뭇 생명이 운동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정복과 파멸적인 후퇴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것을 인간 존재에게 주문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문턱에 도달한다. 토대도 머리도 없는 곳에서 살며 추락해야 한다는 필연이 닥친다.


  1.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책세상, 2005), 2권, §125.
  2. cf. 프리드리히 니체, 하인리히 쾨셀리츠에게 보낸 편지 (1881년 8월 14일) 및 이 사람을 보라(책세상, 200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