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敎正典

이교도적 부정신학


I

번역에 대하여


II

닉 랜드

소멸 갈증


참조 부호


서문


1


3


4


5


6


7


8


9


10


11


참고문헌


조르주 바타유

제쥐브


2


3

희생


4

《도퀴망Documents

꽃말


5


9

《비평 사전》

건축


10

유물론


11


12

먼지


13

도살장


14

비정형


15


17


18

《철학 연구》

미궁


19

《사회학 학회》


20


22

《아세팔Acéphale

신성 모의


23


24


25

《므쥐르Mesures

《예술 연구》


29

앙토냉 아르토

Glenn Gould

부록


ASSIMILARE

엄지발가락

조르주 바타유

엄지발가락은 인간 신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위다. 인간과 유인원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여우원숭이) 사이에서 서로 대응하는 요소 중에 엄지발가락만큼 달라진 신체 부위는 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유인원은 나무에 사는 동물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나무가 되어서, 즉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서 나뭇가지에 매달리지 않고 땅 위를 쏘다닌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물며 인간은 꼿꼿이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발이 하는 기능은 곧 이 꼿꼿한 자세를 지탱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엄지발가락은 이제 나뭇가지를 잡는 데 쓰이지 않게 되고, 다른 발가락과 같은 평면에서 땅을 짚게 된다.)

그러나 머리가 가벼운 인간은, 즉 하늘이요 천상에 머리를 둔 인간은, 꼿꼿이 일어서는 데 발이 하는 역할은 정작 상관하지 않고, 발이란 진흙에 잠긴 것이라는 미명 아래 가래침 보듯 깔보는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든 위에서 아래로 흐르든 신체 속에서 피는 동일한 양으로 흐르지만, 사람들은 상승하는 것을 선호하는 선입관이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란 곧 상승과 같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땅 아래 지옥과 완벽하게 순수한 천국으로 우주를 나누는 상념이 유구하며, 따라서 진흙과 어둠은 악의 법칙이고, 반대로 빛과 하늘은 선의 법칙이다. 인간은 두 발을 진흙 속에 처박고, 머리는 대충 빛 속에 넣어놓고서, 자기를 순수한 공간으로 옮기어 그곳에서 영원토록 있게 해줄 조류를 끈질기게 상상한다. 과연 인간은 오물과 이상향을 왕복하는 운동을 보기만 하면 분노하는 법이며, 발만큼이나 추악한bas, 저열한 신체 부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인간의 발은 끔찍한 고통을 겪어서 흉하고 잘 못 자라기 마련이다. 보기 싫게 티눈이 자라고 굳은살이 생긴다. 비록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향촌 사람들이 말버릇처럼 쓰던 ‘손이 발만큼 더럽다’는 심히 구역질 나는 표현을 따져 보면, 오늘날에는 그 누구나 단박에 이해하는 말은 아니지만 17세기에는 누구나 알아듣는 말이었다.

발의 길이와 형태를 가능한 만큼 가리려는 경향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밀스러운 발 공포증 때문이다. 성별에 따라 발뒤꿈치의 높이는 다르지만, 발이 추악하고 판판하다는 것을 가리곤 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흔히 발에 관한 불안을 성적 불안과 혼동하는데, 중국인의 경우 이것이 특히 심하여서, 여성의 발을 칭칭 감아 자라지 못하게 한 후에도 일탈 중에 가장 지나친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신랑은 아낙네의 맨발을 보지 말아야 하였고, 통상 여성의 발을 빤히 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일이었다. 가톨릭 신부들은 이런 착오에 맞추어서 중국인 고해자에게 ‘여자의 발을 본 적은 없는지’ 묻곤 했다.

튀르키예인(볼가 튀르키예인과 중앙아시아 튀르키예인)도 똑같은 착오를 범했다. 맨발을 보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여서 긴 양말을 신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고전 고대에서는 비슷한 예시를 찾을 수 없다. (비극 공연을 할 때 밑창이 굉장히 높은 신발을 신었다는 기묘한 사실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한없이 정숙하였던 로마의 귀족 부인들도 사람들이 맨 발가락을 그냥 보게 놔두었다. 그러나 발가락을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근대에 크게 발전하였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로몬 라이나흐Salomon Reinach(1858–1932), 프랑스 고고학자이자 종교사학자는 〈부끄러운 발Pieds pudiques1 이라는 논문에서 발가락을 부끄러워하는 태도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며, 스페인에서는 여자의 발이 끔찍한 불안을 일으키는 물건이어서 발이 곧 범죄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스페인이 한 역할이 크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치맛자락 아래 신을 신은 발을 보여주는 것조차도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자의 발을 만지는 것은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며, 그런 무람없는 짓은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여왕의 발은 당연히 최고로 무시무시한 금제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마담 돌누아Marie-Catherine d’Aulnoy(1652-1705), 프랑스 동화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빌라 메디아나의 영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푹 빠져서 여왕님을 껴안는 호사를 누리고자 고의로 궁에 방화하는 상상을 했단다. ‘백만 에큐에 달하는 가옥이 화재로 거의 다 타버렸으나, 여왕님을 자그마한 계단으로 데려가 품에 안기에는 딱 좋은 기회를 얻었기에 상심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은밀하게 재미를 좀 보았으며, 이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여왕님의 발도 만졌다고 한다. 시동 하나가 이것을 목격하고서 왕께 사안을 보고하였으며, 왕은 영주를 권총으로 사형하여 복수하였다고 전한다.’

살로몬 라이나흐가 말한 것처럼, 장딴지부터 시작하여 발목과 발을 잠식하면서 수치가 점점 정교해지는 영주의 집착에서 것을 볼 수 있다. 이 설명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발가락을 상상하기만 해도 폭소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충분하지 않다. 욕망과 공포의 장난, 인간의 욕구과 착오의 장난에 따라 손가락은 능숙한 움직임과 꼿꼿한 성질을 나타내지만, 발가락은 뻣뻣함과 추악한 우매함을 나타내게 되었다. 신체 부위는 변화하고, 위, 후두, 두뇌는 수두룩한 동물종과 수두룩한 사람들을 거치며 난립하며 그 밀물과 썰물을 따라서 상상력을 이끄는데, 상상력은 피가 몸속에서 박동할 때 뼈저린 광란을 느끼고 반감으로 잘 따라오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자기가 포세이돈을 닮아서 위엄으로써 파도를 잠재우리라고 쉽사리 생각하고는 하지만, 내장의 파도는 우글거리며 끊임없이 불어나고 요동치며 인간의 존엄을 느닷없이 땅에 처박는다. 맹목적이며 흔들리지도 않지만, 자신의 추악bassesse, 저열을 막연히 느끼고 이상하리만치 혐오하는 범인(凡人)이 인간 역사의 권위를 마음에 담을 준비가 되어 있다손 치자. 이 사람이 고국의 권세를 증명하는 기념비를 보노라면 발가락에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날아오르던 마음도 갑자기 뚝 떨어진다. 동물 중에 가장 고결한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발에는 티눈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발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발이 사람을 비천한 존재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티눈은 추악bassesse, 저열하기 때문에 두통과도 치통과도 다르다. 부끄럽게 생겼기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발은 진흙 속에 처박혀 있기 때문이다. 신체 자세 때문에 인간 종은 땅의 진흙에서 될 수 있는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순수한 도약이 인간의 오만을 진흙 속에 처박고 끝날 때마다 발작적인 웃음이 터져 나와 희열이 넘치듯, 발가락은 어쨌든 항상 흠이 있고 창피스러운 것이어서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처참한 타락과 같다는 것, 즉 죽음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지발가락의 모양은 시체를 닮아 눈에 거슬리며 불손해 보이고 흉측하기에 이 하찮은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고, 신체 기관의 난잡한 부조화가 낳은 작품 — 인간 신체라는 무질서의 요란한 발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엄지발가락의 형태 자체는 괴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크게 벌린 입 안쪽 같이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의 추(醜)가 특히 우스꽝스런 이유는 부차적인 (하지만 흔한) 변형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움을 되려 극단적인 매력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개 적합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두 개의 매력을 범주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범주를 습관적으로 혼동하는 것이 너무나도 엉뚱한 언어의 오해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엄지발가락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손 치면 그것은 어떤 고결한 희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예컨대 대다수의 취향은 언제나 고상하고 단정한 형태를 더 선호한다. 반면 빌라 메디아나의 영주 같은 경우를 보면 영주가 여왕의 발을 만지며 느꼈던 쾌략은 곧 발이 추하기 때문이고, 또 발의 (醜)bassesse, 저열가 더러운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실제로 더없이 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왕의 발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해도, 그 아름다운 발조차 흉하고 더러운 발에서 신성 모독적인 매력을 빌려 온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여왕이란 선험적으로이상적인 존재이고, 다른 사물보다 썩 숭고한 존재이지만, 냄새나는 군인의 발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은 여왕의 발을 만진다는 것은 찢어지게 인간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빛과 이상적 미를 상상케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혹을 느끼게 된다. 유혹의 규칙은 두 가지인데, 사람들이 이 둘을 자주 혼동하는 이유는 우리가 계속하여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왕복 운동이 끝나지 않는 한, 그것이 어느 쪽에서 끝나든 간에 난폭하면 더 난폭할수록 유혹은 더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엄지발가락을 보자면, 발 페티시즘에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발 페티시즘이 있는 사람은 {더러운} 발가락을 핥기까지 한다. 즉 발 페티시즘은 추악한bas, 저열한 유혹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정신이 순수하고 피상적인 사람들이 쾌락을 비난할 때, 그 쾌락이란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항상 우스꽝스러운 이유가 무엇인지도 설명할 수 있다.

유혹에 대해 직접 명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이 논문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시(詩)라는 수작이 하는 일은 다 도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로써 유혹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태생이 나약하기 때문에 시의 그늘에 있을 때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능을 따르게 된다.) {시(언어)를 버리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엄지발가락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처럼, 우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구 소리 지를 만큼 추악한 것bassess, 저열한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것에 이끌린다는 뜻이다. 또 이런 행위에는 아무런 언어적·문학적 치환 같은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 《인류학L’Anthropolgie》, 1903년, 733-736쪽. 《의례, 신화, 종교Cultes, mythes et religions》, 1권, 1905년, 105-110쪽에 재출판 된 바 있다. (원주)


(1) 30살 남성의 엄지발가락
(2) 30살 남성의 엄지발가락
(3) 24살 여성의 엄지발가락

사진 자크 앙드레 부아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