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달콤함. 문명인은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공포도 예리하게 느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도 벌레에 공포증은 가장 독특한 동시에 가장 잘 발달한 공포증인 것이 확실하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눈에 대한 공포도 포함된다. 과연 눈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면 매혹이라는 표현 외에는 다른 말을 떠올리기가 어려운 듯하다. 뭇짐승과 인간의 몸을 통틀어 눈만큼 매력적인 부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의 매력은 아마도 공포의 경계선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눈을 날붙이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날붙이의 모양은 강력하면서도 상반된 반응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안달루시아의 개〉1를 만든 사람들은 아마 첫 장면에서 피가 낭자한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이 감정을 아주 격심하게 느꼈으면서도 그 진상은 몰랐을 것이다. 아리따운 소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눈을 면도날로 베어낸다 — 이것이야말로 청년이 광적으로 바랐던 것이다. 조그마한 고양이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 청년이 우연찮게 찻숟갈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았고, 청년은 갑자기 그 찻숟갈로 눈알을 파내고 싶은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우리가 먹는 소, 돼지, 양의 눈에는 흰자위가 없는 법인데, 여기에는 필시 기이한 욕망이 엮여 있을 것이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절묘한 문장에 따르면 눈이란 식인의 달콤함이며, 절대 함부로 파고들 수 없는 불안의 대상이다. 하물며 눈이란 무엇보다도 일단 양심의 눈이기에 수많은 공포의 원흉 중에서도 지극히 무시무시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시는 물론이고 그랑빌Grandville이 죽음에 이르기 얼마 전에 악몽에서 파다하게 보았던 눈이 아주 유명한데 [그림1 참조], 이 눈은 살아서 움직이면서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것이다.2 살인범은 ‘자기가 어둑어둑한 숲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꾼다 […]. 피살자의 몸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고, 정신에 아주 강력한 이미지를 환기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가로수가 땀을 줄줄 흘리게 했던 것이다[불어 구어체 표현: ‘노상에서 사람을 죽이다’]. 사실 남자가 죽였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 몸통이었고, 살인 무기 앞에서 […] 피흘리며 […] 벌벌 떨며 발버둥치던 것도 나무 몸통이었다. 피살자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두 손을 올렸으나 헛된 짓이었다. 피는 그를 상관치도 않고 흘렀다.’ 그래서 거대한 눈이 밤하늘에서 나타나 온 하늘에 걸쳐 살인범을 쫓았고, 종국에는 바다까지 쫓아가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그를 집어삼켰다. 파도가 치는 아래서 눈은 수도 없이 증식했다.
이에 대해서 그랑빌은 이렇게 썼다. ‘이 수많은 눈은 떼로 몰려다니면서 다가오는 고문을 보고 꼬여든 것인가?’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눈은 왜 혐오스러운 것을 보고도 마치 파리 떼처럼 이끌렸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1907년부터 1927년 사이에 삽화와 함께 간행된 아주 잔인한 주간지에는 왜 피가 휘날리는 광경 위 그려진 벌건 바탕 위에 꼬박꼬박 눈이 등장하는가? 그랑빌의 악몽에 등장하는 인간 정의의 눈과 엇비슷한 《뢰유 드 라 폴리스L’Œil de la police, 경찰의 눈》3가 맹목적인 피의 갈증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한 이유는 당최 무엇인가? 이 눈은 또 크람폰의 눈과도 비슷하다. 크람폰이 사형 선고를 받고 목에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에 사제가 그에게 접근했다. 크람폰은 사제를 쫓아냈지만, 그 전에 자신의 눈을 뽑아 사제에게 명랑스러운 선물을 주었는데, 이 눈은 의안이었다.
- 이 비상한 영화는 젊은 카탈루냐 사람 두 명의 작품이다. 그 첫 번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로, 작가 특징을 잘 나타내는 그림 몇 점을 수록해 놓았다. 그 두 번째는 감독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이다. 《예술 연구Cahier d’Art》(1929년 6월호, 230쪽), 《비퓌르Bifur》(1929년 8월호, 105쪽), 《바리에떼Variété》(1926년 6월호, 209쪽)에 수록된 훌륭한 사진을 참고했다. 이 영화를 전위예술 작품으로 착각하기 쉽겠지만, 각본이 두드러지는 평범한 전위예술 작품과는 다르다. 수 가지 명료한 사건이 정연하게 일어나지만 도리어 그것이 논리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공포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관객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며 모험 영화처럼 직접적으로 감정을 흔든다. 기술적인 기교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관객들은 강력한 압박을 받으며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이나 제작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서야 멈추게 될지 관객들이 알고 있기는 하겠는가? 브뉴엘 본인조차 눈이 잘리는 장면을 촬영한 후 일주일 동안이나 고열에 시달렸는데 (게다가 당나귀 사체 장면을 촬영할 때는 악취가 가득한 환경에서 작업해야 했다), 어느 지점에서 공포가 매혹으로 바뀌는지를 어떻게 깨닫지 못할 수 있겠으며, 공포야말로 숨 막히는 것들을 부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지 못할 수 있겠는가? (원주)
- 《르 마가진 피토레스크Le Magasin pittoresque》의 독자였던 빅토르 위고는 1847년에 출판된 〈범죄와 속죄〉와 그랑빌의 전무후무한 삽화에서 영감받아 범죄자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눈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이 상관관계를 해명할 수 있는 것은 막연하고 지독한 강박 관념뿐이고 냉철한 생각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익하다. 이 흥미로운 자료를 제시해 준 피에르 드 에스페젤Pierre d’Espezel씨의 학식과 친절에 감사를 표해야겠다. 그랑빌의 작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원주)
{바타유가 말하는 빅토르 위고의 시는 《세기의 전설La Légende des siècles》에 수록된 〈양심La Conscience〉이다 [Pari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 1950, 26-27]. 시에는 신의 눈이 카인을 따라가 (자진해서 들어간) 무덤까지 뒤쫓는 모습이 등장한다 [VE 19].} - 경찰의 눈을 의미하는 《뢰유 드 라 폴리스L’Œil de la police》는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발행된 주간지로 (즉 1907년부터 1927년까지 발행되었다는 바타유의 설명과는 다르다), 주로 범죄 사건을 다뤘다 [Bnf][Wikipedia].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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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J. 그랑빌의 마지막 그림 : 첫 번째 꿈 — 범죄와 속죄”
《르 마가진 피토레스크Le Magasin pittoresque》, 1847년, 212쪽.
(2), (3) 《뢰유 드 라 폴리스L’Œil de la police》, 총천연색 표지. — 1909년 26호.
(4) 살바도르 달리, 피는 꿀보다 달다 (1927).
바르셀로나,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