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은 먼 옛 시대의 사원처럼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 (오늘날의 힌두교 사원에 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사원에는 사람들의 애원을 들어주고 도살을 행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었다. 이에 따라 신화적인 신비와 음산한 장엄 사이에 충격적인 우연의 일치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피가 흐르는 장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도살장에 낭자한 혼란스런 모습을 보더라도 이것을 떠올릴 수 있다.) 윌리엄 시브룩William Seabrook은1 환락적 생활양식은 아직껏 남아있지만, 칵테일에는 희생제의의 피가 들어가지 않는다며 금시대의 풍속이 무취미하다고 썼다. 미국 사람이 이렇게 심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것을 보자니 참 묘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도살장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여maudit, 저주받아 마치 콜레라 환자들을 실은 배처럼 격리되고 말았다. 한데 정작 이 저주에 당한 자는 도살업자와 동물이 아니다. 청결에 대한 병적 욕구에, 답답한 편협과 권태에 순응하는 자기 꼬락서니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저주를 내린 선량하신 사람들이 도리어 저주에 당한 것이다. 이 저주 (저주를 내뱉는 자만 두려워하는 저주) 때문에 사람들은 도살장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근근이 살고, 무정형의 세상을 떠나 썩 고상하게 은거한다. 그곳에는 공포스러운 것이 일절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욕에 대하여 지울 수 없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치즈나 먹게 되는 것이다.
- The Magic Island, Harcourt, Brace & Company, 1929. (원주)